1년전 임신기간 절반 정도 지났을 때 상담을 받았고 상담 받던 중 위니캇 수업을 듣게 되었고 수업 때 [리딩 위니코트]를 읽었다. "임신 + 분석 + 위니캇"의 경험은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여졌다. 개인적인 대혼돈의 시기에 그나마 나아갈 갈피를 잡을 수있었던 것이 분석과 공부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겨우 갈피를 잡았을 뿐이지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붕괴의 공포'라는 위니캇의 논문을 읽으며 흥분 상태가 되었던 나를 잊을 수 없다. 공부하다보면 온갖 정신병리적 상태는 모두 내 얘기 같고 공감될 때가 있는데 (모두 우리 정신 안에 있는 것들에 대한 기술이니까) 그 당시 '붕괴 breakdown'이라는 단어는 나를 정확히 설명해주는 단어 같았다.
breakdown 이라는 단어가 나에게 주는 이미지는 자잘히 부서져 산산히 흩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임신 중 나는 출산 후 다가올 나의 상태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책에서 말하는 과거에 내가 경험했지만 기억해내지 못하니 '미래'에 곧 닥칠거라 생각하고 공포에 불안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것이 임신 (=곧 엄마가 됨)을 통해서 자극 받아 전이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태였다. 누구나 출산 후 자신의 커리어, 자신의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있겠지만 나는 그 감정에 좀 강하게 둘러쌓여있었다. 나는 나에게 집중하느라 온전히 뱃 속의 아기에게 집중하기 어려웠다.
나는 '상실감'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거 같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미래에 일어날 내 삶의 상실, 나에 대한 상실에 대해.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음 속 깊이 느끼고 괴로워 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위니코트가 붕괴의 공포 논문에서 예를 들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유아기 어딘가 breakdown point가 있었을 것 같다. 바로 나의 죽음, 나의 상실을 겪었던 그 무엇인가가 말이다. 그러나 이는 나도, 나를 길러낸 나의 엄마도, 그 누구도 기억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나는 애써 추측하려고 했었다 당시 가정 환경, 당시 부모의 나이, 우리가 살았던 지역, 환경...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자아 단위가 만들어지기 전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리저리 궁리하다보면 어느순간 탁! 하고 만나질 수도 있을거라 기대하기도 했다.
그냥 다가오는 불안과 공포에 고스란히 노출된 기분이었다. 그저 내가 지금 breakdown point 그 자리에 다시 되돌아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떤 감정이 강하게 올라와 나를 지배하려고 하면 'breakdown'이라는 단어를 머릿 속에 떠올렸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기를 낳고 초반에 전이는 여전히 활성화되었고, 더욱 촉진된 부분도 있었다. 1년이 지난 지금 가만히 앉아 다시 그 챕터를 마주하고 지금은 흐릿해진 당시의 감정을 붙잡고 글을 쓰고 있다. 돌이켜 보면 출산 후 8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를 잃지 않고 붙드는 방법을 깨달았던 거 같다. 아직 온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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